[도서 소개] 살가죽들의 사랑
"어쨌거나 전 제가 할 일을 할 거예요. 전 씨발 좆같이는 못살아요. 그러니까 나한테 항복하란 말은 하지 말라고요." — 보디 브로더스, 《더 와이어》 중에서 (본문 서문 인용)
■ 책 소개
2026년, 기성 본격 문학의 매끄러운 위선과 안일한 위로를 거부하고 우리 시대의 정서적 지옥도를 가장 날선 문법으로 해부하는 출판사 ‘금치산자레시피’의 신작 소설·시집. 김승해 저자의 『살가죽들의 사랑』은 자율주행 알고리즘의 치명적 결함, 실패한 섹스로봇 산업, 불법 추심 자본 등 근미래 디스토피아적 소도구를 활용하면서도, 그 본질은 결국 이 파멸의 톱니바퀴를 함께 돌리고 있는 인간들의 지독한 ‘공범성’을 폭로하는 하이퍼리얼리즘 작품집이다.
이 책에 수록된 9편의 소설과 독립적인 시, 산문들은 거대한 시스템을 핑계 대며 면죄부를 얻으려는 모든 인간들의 비겁함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동료가 알고리즘의 제물이 되어 독방에 처박힌 날에도 청약 가점을 계산하고 주식 차트를 들여다보는 인물의 모순부터, 자신의 안위와 일상을 위해 말단 부품을 철저히 소거해 버리는 자들의 계산법까지. 본문 중간에 가차 없이 난입하는 수학 공식 $y=b/(a-a')$과 그래프는 체제의 억압을 고발하는 도구가 아니라, 철저하게 서로를 방조하고 착취하며 연대하는 우리 모두의 이기적인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서늘한 서류로 기능한다. 안전지대를 용납하지 않는 단단하고 명징한 문장을 통해, 저자는 독자에게 피할 수 없는 윤리적 청문회를 선사한다.
목차
- 차례
- 대기권 밖으로 (소설)
- 살가죽들의 사랑 (소설)
- 붉은 말 (시)
- 사건의 전말 (산문시)
- 삼일 (시)
- 단서 (시)
- 피와 똥 (소설)
- 내 몫을 찾아서 (소설)
■ 수록작 소개
- 「대기권 밖으로」 (소설): 세상의 모든 가짜 진정성과 선량한 씨발것들을 혐오하며 늘 화가 나 있던 남자 ‘ㅍㅍ’와 그의 연인 ‘ㅉ’의 이야기. 이별을 통보하려던 아침, ㅍㅍ는 국제도량형 변경으로 용량이 변해버린 정수기 물통을 안고 나타나 대기권 탈출이라는 기상천외하고도 잔혹한 야망을 실행에 옮긴다.
- 「살가죽들의 사랑」 (소설): "인간이 로봇보다 싸서" 결국 실패로 끝나버린 섹스로봇 산업의 시대. 박살 나고 오물로 가득 찬 기계를 고치며 미수금을 추심하러 다니는 엔지니어 ‘JJ’는, 타인의 고통을 얌전하게 '참아주고 인내한 행위'가 실은 비극을 유지해 온 가장 견고한 방조죄임을 깨닫는다.
- 「어쩌다보니」 (소설): 달과 해, 가로등이 동시에 켜진 마포대교의 새벽녘. "우린 결코 서로를 구할 수 없다"고 절망하면서도 아무것도 망치고 싶지 않아 서로를 저주하고 끝내 안아버리는 ㅌ과 ㄹ의 지극히 사적이고도 정교한 단문 치정극.
- 「피와 똥」 (소설): 개 분장을 한 전위 예술가를 ‘인간 객체 아님’으로 오인해 밀어버린 4세대 자율주행 세단 . 최종 배포 단계에서 인지 모델 승인 서류에 도장을 찍었던 ‘나’는, 사수가 독방에 갇힌 날에도 청약 통장 고지서를 확인해야 하는 일상성이야말로 가장 지독한 형벌임을 감각한다.
- 「내 몫을 찾아서」 (소설): 도심에 거대한 돌탑이 출현한 재난의 날. 빚을 독촉하러 온 추심업자 A와 채무자 DDD가 벌이는 말장난 같은 아귀다툼. "추심업자를 모두 살해하는 것이 시스템 전체적으로는 이득"이라는 섬뜩한 경제학적 수식과 그래프의 난입 끝에, DDD는 피 묻은 옷을 갈아입고 다시 자본주의의 승자 대기열로 매끄럽게 합류한다.
- 시 연작 (「붉은 말」, 「삼일」, 「단서」): 소설의 잔혹한 인과율을 잠시 멈춰 세우고, 상처받은 내면을 독립적인 파편들로 뿜어내는 장치. 피와 오물 속에서 "나는 산 사람의 편이에요"라고 처절하게 던지는 고백(「붉은 말」)부터 , 영원 근처에서 도려내진 불면의 밤(「삼일」), 그리고 "말할 수 없다면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 아니고서는 말할 수 없는" 언어의 절망(「단서」)을 노래한다.
■ 출판사 서평
“어쨌거나 전 제가 할 일을 할 거예요. 전 씨발 좆같이는 못살아요. 그러니까 나한테 항복하란 말은 하지 말라고요.” — 보디 브로더스, 《더 와이어》 중에서
『고깃덩이들』 연작 시리즈와 소설/시집 『1x4』를 통해 기성 문단의 얌전한 문법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토를 구축해 온 김승해 작가가 2026년, 한층 더 정교하고 파괴적인 신작으로 돌아왔습니다. 금치산자레시피가 선보이는 『살가죽들의 사랑』은 세련된 기술 문명과 자본주의의 기만적인 장막을 사정없이 찢어발기는 ‘문학적 테러’이자, 시스템의 폭력에 신음하는 최말단 인간들이 깨워낸 현대적인 ‘디지털 주술서’입니다.
1. 매끄러운 화이트보드 위에 문질러 바른 인간의 피와 오물
본 서적은 가짜 지능이 지배하고, 거대한 기술 시스템의 불투명성(Black Box) 뒤로 진짜 책임자들이 숨어버린 차가운 디스토피아를 무대로 삼습니다. 자율주행 세단의 인지 모델이 도로 위의 인간을 99.9%의 확률로 ‘개(Dog)’로 판정해 브레이크 없이 뭉개버리는 세상, 인간의 비명이 라이다 데이터 속에서 무의미한 ‘노이즈’로 여과되는 세상에서 인간의 존엄은 철저히 소각됩니다.
작가는 이 차가운 하이테크 사회의 안면에 피, 똥, 오줌, 고름, 부패한 분비물 등 가장 원초적이고 비천한(Abject) 물질들을 기습적으로 투척합니다. 세련된 시스템이 통제하지 못하는 장(腸)의 뒤틀림과 배설의 비명은, 기술과 자본의 톱니바퀴에 갈려 나가는 인간이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하고도 내장적인(Visceral) 저항 수단이 됩니다.
2. 가전제품 A/S 노동으로 전복된 SF, 그리고 테크노-샤머니즘
기존의 SF 디스토피아가 “로봇에게도 영혼이 있는가?”라는 고상한 철학적 질문으로 도망칠 때, 김승해은 “인간들은 왜 정성 들여 청소조차 하지 않으면서 인형을 사 제끼는가?”라는 지독하게 끈적거리는 생활형 질문을 던집니다. 792페이지에 달하는 가혹한 위생 매뉴얼, 질 내부 주름에 정액이 고여 썩는 곰팡이 감염의 위험, ‘샤워해’라는 명령 한 번에 1.3톤의 수자원을 낭비하며 파괴되는 기계의 파국은 장르의 환상을 깨부수는 독창적인 성취입니다.
더 나아가 작품은 현대 철학의 최전선을 관통하며 기이한 오컬티즘으로 나아갑니다. 우주 태양풍 속에서 전파 패킷을 영매처럼 읽어내는 ‘디지털 무당’ 크리쉬나의 출현, 카세트테이프의 아날로그 코드를 로봇의 귀에 대고 읊조려 스스로를 불태우게 만드는 흑마술적 영독(詠唱), 도시 한복판에 솟아오른 정체불명의 모놀리슈(돌탑)가 자아내는 코스믹 호러는 독자에게 서늘한 미학적 충격을 안깁니다.
3. 산문의 잔혹함을 구원하는 서정적 피고름, 시편 트릴로지
이 책의 가장 전위적인 미학은 소설의 서사 아래에 「붉은 말」, 「사건의 전말」, 「삼일」, 「단서」로 이어지는 강력한 운문들을 배치하여 장르의 순혈주의를 폭파했다는 점입니다.
소설들이 가한 외적 폭력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정서적 피고름을 받아내는 이 시편들은, 시스템이 계산하는 차가운 ‘이자’의 숫자에 맞서 배제되고 죽어간 자들의 이름을 사흘간 호명하는 주술적 애도입니다. “말이 아니고서는 말할 수 없다”는 언어적 불가능성의 비명과,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자아내는 도덕적 부채감은 작품집 전체를 관통하는 단단한 정서적 닻이 되어줍니다.
짚어보기: 진부함을 돌파하는 지독한 한국식 하이퍼리얼리즘
동시대 가상 지능의 디스토피아를 말하면서도, “당장 내일 아침 출근을 걱정하고, 주식 차트를 보며 아파트 분양 청약 가점을 계산해야 하는” 2026년 현재 우리의 숨 막히는 일상성을 포착해 내는 악력은 소름 돋도록 정확합니다.
이 책은 결코 청결한 위로를 건네지 않습니다. 정형화된 제도권 문학의 위선에 신음하던 독자들에게, 이 지옥 같은 시스템 속에서 끝내 내 몫을 찾지 못하더라도 “몇 번은 참고 몇 번은 죽이자”며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길을 떠나는 인물들의 걸음은 그 어떤 낙관론보다 정직하고 강력한 카타르시스로 가닿을 것입니다.
- 발행처: 금치산자레시피
- 디자인: 써드엔지니어링카르텔